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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4/05/08 | 글쓴이 김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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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6] 공릉청소년정보센터 이승훈 센터장

공릉청소년정보센터 이승훈 센터장을 인터뷰하러 가는 길가에는 5월의 신록이 푸르름을 더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세월호의 침몰과 허술한 대처로 구조할 수 있었던 탑승자를 싸늘한 주검으로 맞는 마음은 비통하고 죄스럽기만 하다.

2월에 문을 연 꽃다방에서 마주친 이승훈 센터장은 꽃다방 운영자 간의 마찰로 지금 휴업중이라고 했다. 청소년들이 운영하며 의견이 엇갈려서 망했다고 하는데, 모든 일이 처음부터 순조롭게만 갈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공릉동에서 전해지는 소식은 늘 싱그럽고 활력이 넘쳐난다. 북카페 다락, 마을과 마디, 공릉동 공공기숙사, 꿈마을공동체, 여러 움직임들이 활발하다. 그 중심에는 공릉청소년문화정보센터라는 우물터 역할을 하는 공용공간이 있다. 수도 시설이 없던 시절의 마을 우물터가 그 마을의 중심역할을 했던 것처럼 이 센터가 중심이 되어 공릉동의 여러 모임들이 쑥쑥 커가고 있다.

노원청소년수련관을 가도 그렇고, 공릉청소년문화정보센터도 그렇고, 젊음의 기운이 느껴진다. 센터 내 구석구석에 붙은 포스터와 홍보물들이 자연스럽게 붙어 있어서 들어오면 기분이 좋아진다. 3층 이승훈 센터장 사무실로 가는데 유스카페에서 강렬한 피아노음이 들려온다. 중간고사를 치른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학생이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며 시험 스트레스를 날리고 있고, 포켓볼을 맞추며 머리를 식히는 학생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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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 센터장과 마주 앉자마자 질문을 던졌다.

오랫동안 청소년과 생활을 해오고 계시는데 나의 변화, 생각의 변화가 있었나요?

저는 15년 정도 계속 청소년 쪽의 일을 해 왔어요. 초기에는 청소년 중심의 활동이나 서비스가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을 했다면, 청소년의 문제가 결코 청소년들만으로 풀리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청소년문제는 문화의 문제이고, 우리 사회 전반에 있는 경쟁주의적인 공기의 문제인데요. 청소년전문가와 전문기관들도 청소년 문제를 접근할 때 청소년 개별단위의 단편적인 서비스로 개선하려는 대응을 합니다. 공릉동에서 3년 반 정도의 경험으로 마을의 흐름과 문화, 공기가 함께 바뀌어야 된다는 것을 인식했다는 것이 저한테 변화라면 변화라고 할 수 있죠.

좋은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 청소년문제는 청소년의 문제만이 아니죠. 환경의 지배를 받게 되니까요. 그런 점에서 공릉동의 움직임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잘 가는 것 같습니다. 한 지역에서 공릉정보센터와 같은 센터가 자리 잡고, 확대해 나가면서 역할을 많이 한다고 생각해요. 각 동마다 하나씩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려면 인력이 많이 필요할 것 같아요.

 이런 컨셉이 없는 것 같아요.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전문가 교육과정을 받고 나면, 다들 그 분야에 직접적 서비스를 잘 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각 기관들이 효율성이 높다, 전문성은 좋다고 하는데, 그 기관에서 담을 수 있는 사람도 얼마 안 되고, 그 영향력이 개인의 변화를 확실히 끌어내지도 못하고 마을의 영향력도 그렇게 크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의사선생님이 병 걸린 사람 치료를 잘하는 것도 전문성이지만 병 안 걸리게 하고, 마을의 위생상태를 살피고, 본디 마을이 가진 건강성을 강화시키는 것도 중요한 책무일 수 있잖아요. 우리는 그냥 지역에 일하는 사람들이나 기관들에게 책무를 물을 때 병 걸린 사람을 얼마나 잘 치료를 했느냐는 쪽으로 집중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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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도 문제가 된 청소년을 얼마나 구제를 했느냐 이런 쪽으로 간다는 말이지요?

우리 사회가 너무 경쟁적이고 천박한 상태로 가고 있는데 공공서비스, 공공기관들이 최후의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 공공성을 지켜내기 위한 거점으로, 마중물로 일할 수 있어야 하는데요. 좋은 사회를 꿈꾸기보다는 이 사회체재에서 떨어진 사람 한두 명을 끌어올리는데 집중하게끔 학교의 교육과정도 그렇게 편성되어 있고요. 성취를 평가할 때도 그런 식이죠. 단편적인 건 많이 하는데 모든 문제가 단편적인 게 아니고, 아주 복합적인 상황에 있는데요. 복합적인 상황들을 함께 보면서 실마리를 푸는 데는 워낙 익숙하지가 않아요.

 운영에 있어서 자율적인 운영을 하는데 한계가 있을 것 같은데요. 장기간의 계획을 세워 사업을 꾸준히 해나가는 것이 필요한데 실적 위주로 평가를 하는데 힘들지는 않은가요?

저희는 힘들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어요. 저희 같은 경우에는 공동체적 전략이란 말을 사용해요. 혼자 다 결정하고, 서비스 만들고, 재정 있는 만큼 서비스하면 쉽지요. 그런데 모든 걸 사람들하고 협의하고 공유하고, 뭘 할지 의견을 물어보고 이러니까, 초기에는 힘든데 일단 바퀴가 굴러가고 나면 훨씬 쉬운 방식이, 이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저희 센터 혼자서는 바꿀 수 없는 방법인데, 저희 센터와 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 문제는 훨씬 해결하기가 쉬운 부분이죠. 어린이날 행사를 해도 저희가 주어진 재정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은 조그맣게 몇 개 부스를 만들어서 할 수 있는 일인데, 마을의 여러주민, 단체들이 같이 모여서 하면 훨씬 작은 노력을 하고서도 큰 성취를 이룰 수 있어요. 처음엔 좀 힘들지만 저희한테도 이게 효율적으로 일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면 마을 주민들을 많이 참여시킨다는 이야기인데요. 공릉동 주민들을 보면 똘똘 뭉쳐서 여러 단체들이 힘을 모아 잘 해나가는 것 같아요. 그런데 다른 지역은 그렇지가 않아 보이거든요. 공릉동 주민들이 잘 뭉치는 계기가 있지 않았나요?

지리적 요인인지는 모르겠는데 노원구에서도 변방이다 보니까 사람들이 갖는 약간의 소외감 이런 것들이 조금 뭉치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한 것 같아요. 경춘선이 한 쪽을 가르고 달리다 보니 마을이 이 안쪽에서 모아지고 있어요. 아파트 동시 입주자들이 많은 부분도 요인인 되는 것 같고요. 지금도 공릉동 사람이 다 뭉치는 게 아니에요. 어느 마을이나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고 보거든요. 그런 사람들이 자기 혼자만 그런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나 혼자 어떻게 가꿔’, 그러면서 좌절해 버리거나, 움직임 없이 살거나 남들처럼 산다거나 하지요.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다른 동네 사람보다 혼자 있지 않다는 걸 느끼고, ‘우리 이웃도 더 나은 동네를 생각하네, 내 옆집도 학원에만 맡기는 교육만으로는 안 된다고 생각하네’, 이런 사람들이 많이 확인되는 것 같고요.

저희 센터가 생기기 전에 가슴 아픈 일이 있었죠. 납골당이 생긴다고 마을 주민들이 마음의 상처가 있었는데 센터가 생기고, 자원활동을 하면서 그 상처를 치유하고 싶은 분들이 계셨던 것 같아요. 저희는 그것들을 끌어내기 위해서 주민교육 같은 걸 많이 했어요. 강의를 들으며 거기서 눈물을 흘리다가 만나신 분들이,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야하는데, 이런 생각을 하는 분들이 만났어요. 그게 첫 번째 계기이고요.

두 번째 계기는 어린이날 행사가 있기 전에 와글와글 신나는 장터로 시작한 일이에요. 주민분들이 그냥 저희 센터에서 해보고 싶다고 했는데, 처음에는 직원들이 연수가는 날이라 반대를 했어요. 주민들이 아이들을 모아오면서 벼룩장터를 열어보겠다고 했는데 행사를 치렀거든요. 직원들이 혼자서 기획하고 진행하면 할 수 있는 영향력은 아주 작은데 주민들이 참여해서 하니까 훨씬 규모있고, 재미있고 풍성한 행사가 되었어요. 직원들이 그날 감동을 먹었어요. ‘아, 지역주민과 함께 한다는 것이 내가 판을 다 깔아놓고, 그냥 동원하듯이 참여시키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직접 하게끔 응원하고, 약간만 도와드리면 훨씬 우리가 하는 것보다 풍성한 활동이 될 수 있구나’하고 직원들이 많이 감동했고, 마음이 열리고 주민과 함께 가는 계기가 되었어요.

요즘 사람들은 직접 참여하는 걸 원하는 것 같아요. 옛날 같으면 판을 깔아주고 와서 해라고 하면 했는데 지금은 자기가 직접 뭔가를 재능이나 노력이 들어가서 이뤄지는 걸 원하는 것 같아요. 아이들도 마찬가지이고, 그래야 뭔가 제대로 되는 것 같아요. 센터에서는 그걸 빨리 알아서 나간 것 같아요. 그게 몇 년전인가요?

3년전, 만 3년 되었어요. 저는 부산에서 살다 왔는데 서울 사람들은 내어놓을 게 많은 것 같아요. 서로 모르고 안 내어놓아서 그렇지 다 내어놓을 게 많은 것 같아요.

 네, 일을 해 보면 인재들이 많아서 무슨 일이든 다 해낼 수 있겠더라고요. 적극적으로 참여를 안 하니까 잘 몰라서 그렇지요. 공릉에 카페라던가 단체들이 많이 생기는 것 같아요.

센터가 처음부터 몇가지 중요시하게 생각한 게 있었어요. 몇 가지 컨셉, 방향을 이야기 했는데요. 하나는 우발성에도 가치를 두자, 우리가 왜 다 계획하고 참여하도록 하느냐? 큰 방향만 잡고 있으면 주민들과 청소년들이 하는 일이 좀 미흡하더라도 우발성에서 오는 영감 효과가 있어요. 우발성을 좀 열어놓자, 그래야 참여가 재미있게 일어난다, 그렇게 생각했고요.

또 하나는 인큐베이팅, 자원봉사자는 전문가가 일하는데 서포터즈만 하라고 하지 말고, 주민들은 우리보다 더 능력이 있고, 아이들을 아파하는 마음이 있으니까 인쿠베이팅해나가야 된다고 생각해요. 이분들이 독립적으로 활동을 해나갈 수 있게끔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지, 우리 밑에서 도와만 줘라, 이러는 건 아니거든요. 자원활동하시는 분들이 비영리모임을 구축해서 활동도 직접 하고, 카페 운영도 직접 하고, 센터의 일부 활동은 주민이 직접 만드는 부분이 있어요. 큰 방향은 저희가 세워 놓되 활동들은 주민들이 직접 운영해가게 하는 일들을 하면 주민들은 오히려 더 재미있어하고 책임감도 더 갖게 되더라고요. 저희가 동원할 수 없는 것들, 집집마다 있는 프라이팬이지만 저희가 뭘 하려면 사야 되고 그런데요. 주민들은 요리 프로그램을 할 때 하루 재미있게 쓰고 가져 가시거든요.

재미로 모임을 하다가 구체적인 모임활동으로 발전을 하기도 해요. 공예를 잘 하는 분은 그걸로 협동조합을 해 보자, 그걸로 센터에서만 봉사하지 말고 학교로 넓혀나가자고 하면 저희는 훨씬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센터는 그 단계까지 함께 걸을 수 있는 동역자, 마중물이 되고자 합니다.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건 여기 센터가 있어서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공릉동에 이런 센터가 있다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마을의 공용공간이잖아요. 오시는 분들 중에 센터를 그냥 아용하시는 분도 많지만 센터를 좀 아시는 분들은 센터를 굉장히 아껴 주시거든요. 뭐가 부서졌으면 고쳐야 된다, 뭐가 떨어졌으면 주워주고, 마을 주민들이 함께 아끼는 공간이 되었어요. 저희는 우물터라고 표현하고 있어요. 마을에는 전부 사적인 공간만 있는데 여기는 공용으로 쓰는 공간이잖아요. 같이 쓰는 우물터는 서로 조심해야 안 망가지거든요. 거기다 오물 집어던지고 비닐 집어던지면 안 되는 것처럼 주민들이 서로 좋은 삶을 가꾸는 공용의 공간이 센터가 되기를 바라는데, 조금씩 그렇게 되어가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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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도 주민센터 바로 옆, 마을 속에 있으니까 우물터 같은 느낌이 들어요. 공용 공간이지만 만만해 보이는 공간이죠. 이런 공간이 구석구석에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요. 운영하는 리더가 열린 마음으로 큰 틀을 잘 잡고 이끌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센터장님이 그 역할을 잘 하는 것 같아요.

 직원들하고 초기에 많이 토론해서 운영방향들에 대한 원칙을 세워 놓았는데 직원들이 그 부분에서 수용을 해 주었어요. 다른 조직들을 보면 운영의 비전이나 방향이  없는데도 많고, 있긴 하지만 사문화된 경우가 많아요. 저희는 새로 생긴 기관이기 때문에 그런 장점도 있는 것 같아요. 만들어진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걸 지향해 나가야 할지 토론하면서 만들어놓은 것들을 지키려고 더 노력하고 그래요. 신생기관이라 그런데 10년이나 20년이 가야 전통이 되거든요.

처음부터 젊은 센터장님이 운영을 해서 청소년과의 거리가 없어서 가능하지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희 자녀들도 어리고 금방 청소년이 될 거라는 걸 아니까, 집중하는 부분이 더 있을 것 같아요. 다 키워놓았으면 그런 점이 약간은 있겠다고 생각돼요. 지역에서 아이들 만나봤던 경험들이 이 센터를 운영해 가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제가 그냥 센터에만 있었던 게 아니고 마을에서 청소년들을 지원하는 사업들을 많이 했어요. 그때마다 어려웠던 점들이 마을에 서비스가 없는 게 아니었거든요. 세월호 침몰사건에서도 마찬가지로 잠수부들도 많고, 구명정들도 많이 준비되어 있고 한데, 실제로 그것들을 적재적소에 연결되게끔 하는 조정의 역할은 잘 안 되었잖아요.

사람들은 서비스가 있다고 생각하니까 서비스가 나를 도와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 서비스에 접근해 보면  내가 원하는 서비스가 아니고, 서비스가 없었으면 각자가 그 문제에 대한 어떤 대응이라도 했을 텐데요. 서비스가 생겼다고 생각하니까 내 아이의 문제에 대해 무관심해져 버리고 자기의 책무성도 없어져 버리게 돼요.

 공무원으로 청소년 관련 일을 했던 분이 이 센터를 운영했으면 지금처럼  청소년과 주민들이 적극 참여하는 역동적인 센터가 안 되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분들이 운영하면 접근이 다를 것 같아요. 청소년과 연령 차이가 적어서 청소년들도 만만하게 찾아오는 것 같고요.

 예, 청소년들도 저를 무겁게 보지 않고 만만하게 봅니다.

지금 이 기성세대들이 5-60대 들이 20-30대를 못 믿는 경향이 굉장히 많은 것 같아요. 맡겨주면 잘 해 나갈거라 생각하는데 뭇 믿어주다 보니 사회가 제대로 안 굴러가는 것 같거든요.

 저는 30대 후반에 여기 센터로 왔어요.

 각자가 대응을 할 수 있었는데 서비스가 있다고 생각하니 부모들이 서비스에 맡겨버린다고 했지요?

네, 그렇죠. 어린이집, 방과후학교에서 10시까지 돌봄 한다고 하니까 부모들이 그 시간에 맡겨놓고 딴 거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서비스로 잘 보호받는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가 않아요. 사회적 책임을 갖는다는 게 재정 투입된 공공시설에 책임을 몰아주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예전에는 내 아이가 비행하고 나쁜 짓 하면 부모가 큰 책무를 느끼고 끌어안고 울면서 가르쳤어요. 그런데 어느 날 그런 아이들을 교정하는 프로그램이 생긴다고 하니까 그런 프로그램이 대신해주면 되지 하고, 학교도, 부모도, 그렇게 보내 버리고, 서로 책임을 회피하지 실제 어떤 변화는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

요즘은 밥상머리교육이 사라졌다고 하잖아요. 부모들이 가르쳐야 할 걸 안 가르치고 학교에 맡기고 일찍부터 어린이집에 보내버리니까 자꾸 그 아이들은 마음이 허해지고, 그래서 청소년기를 힘들게 보내는 것 같아요. 그래서 중학교 선생님들이 힘들어하시고요.

그런데 신나고 재미있게 가르치는 선생님을 만나기도 했어요. 많은 선생님들이 힘들어하시는 건 알기는 잘 알겠는데, 어떤 선생님은 아이들을 만나며 자기도 계속 꿈을 꾸고 성장하면서 중고등학교에서 아주 재미있게 일하시는 걸 보았어요. 이런 선생님들이 많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들을 서비스로 만나는 선생님은 가슴이 아픈 게 아니고 머리만 아픈 거지요. 가슴으로 만나는 선생님들이 많아야 되는데 어긋나면 가슴 아파하고, 그걸 되돌리려고 애쓰다 보면 조금 움직이는 걸 보게 되면, 기쁘고 즐겁고 일할 맛이 나고 그래야 되는데 그렇지 않은 게 안타깝지요.

그것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예전에는 요만한 걸 가지고 다가가면 감동을 줄 수 있었는데, 요즘은 이만큼의 것을 가져가야 감동을 줄 수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선생님들의 역량이 딸리기도 하고, 빨리 변하지 않고 그만큼 노력을 많이 기울여야 되는 것 같은데요.

저희도 자유로울 수가 없어요. 모든 게 엉켜 있는 것 같아요. 재정을 투입했으면 효과를 빨리 내라고 하니까 저희도 학교밖 청소년이 몇 명이 와서 몇 명이 검정고시를 합격했느니, 이런 것들을 물어봐요. 담당자는 부담스럽긴 한데 사실 아이들이 변화되는 건 그들이 방황할 때 옆에 가서 서 주고, 같이 흔들려주고, 그런 걸 통해서 변화되는 건데 어려운 것 같아요.

지금 하는 일이을 15년째 하고 있으니까 천직이라고 생각하나요?

네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보람도 많이 느낄 것 같아요.

네, 저는 되게 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일 하면서 밥벌이할 수 있는 게 참 좋아요. 천직이라기보다는 감사한 일이지요.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게. 대학 때 전공은 기독교교육을 했고, 대학원에서는 사회복지학을 공부했어요.

 부산과 노원은 다른가요?

부산 사람들은 서울에 대한 로망과 콤플렉스가 있는데, 공릉동 사람들은 중계동에 대한 로망과 콤플렉스가 있어요. 거의 비슷한 거 같아요. 전국 어디서나 더 나은 동네에 가서 성공률이 높게 자식을 키우고 싶다는 로망이 있는 건요.

 중계동은 강남 대치동으로 가고 싶은 로망이 있어요.

설국열차 칸 올라가는 것과 같죠. 저희 센터가 그걸 알아챘어요.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엄마가 돈 벌면 중계동 간다고 하더라고 해서, 여기서 청소년기를 다 보낼 거잖아요. 여기가 고향이고, 그러면 이 마을을 좋게 만들어보자, 돈 벌었다고 자기 고향을 버리고, 어디 가서 사는 사람은 고향이 달라지나! 엄마, 모교, 고향은 달라질 수가 없고, 내가 일부가 되는 것인데 그래서 그걸 이야기하고 그런 이야기에 주민들이 많이 동의해 주셨어요. 이사 가는 것보다 우리 마을을 더 살기 좋게 의미있게 만드는 일에 함께 하기로요.

그래서 노원에서 공릉동을 집중하고 있어요. 주민들과 학생들은 공릉동에 산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지요?

그렇죠. 참여를 많이 하시는 분들은 그렇게 느끼는 것 같아요. 아직도 그런 사람들이 공릉에 다수라고 보지는 않아요. 아직도 아주 소수이고, 소수가 변화를 조금씩 더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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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는 꿈마을프로젝트라고 해서 꿈을 꾸게 하는 걸 굉장히 강조해요. 그래서 꿈나르샤축제도 진행해요. 그러므로 해서 꿈을 많이 꾸던가요? 꿈을 찾던가요?

저희가 이야기하는 꿈은 좀 다른 것 같아요. 꿈이라고 표현은 하지만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가도 중요한데, 어떻게 살고 싶은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요. 마을 선언도 저희가 만들었는데 마을 선언에서는 우리 마을에 대한 꿈들을 이야기해요. 우리 마을은 협동하는 마을, 문화 마을, 이런 꿈들을 꾸어요. 어느 마을에도 없는 마을 선언문을 가지고 있지요.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공릉동 꿈마을 선언문’

 

우리는 이웃과 이웃이 반갑게 인사하며, 협동할 수 있는 마을

마을의 모든 아이들이 당당하고, 단단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아이들의 꿈을 응원하는 마을로 공릉동을 만들어가기 위해 모였다.

 

우리가 꿈꾸는 마을은

1. 우리 아이들의 꿈을 함께 키워가는 꿈 공동체 마을이다.

2. 배움과 가르침이 마을 곳곳에 넘쳐나는 학습공동체 마을이다.

3. 마을 곳곳에 꿈꾸는 문화가 흐르는 문화공동체 마을이다.

4. 이웃을 돌보고,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 사는 행복공동체 마을이다.

 

우리 마을을 아끼고, 우리 아이들의 겅강한 성장과 꿈을 응원하는

모든 이들은 꿈마을 공동체의 일원이다.

꿈마을 공동체는 공릉동을 꿈마을로 만들어가기 위한 일에

온 마을 사람들의 힘과 지혜를 모아 함께 노력해나갈 것을 선언한다.

2012.9.9.

공릉동 꿈마을 공동체

 

저희가 꿈을 강조하는 이유는 이 꿈이 아이들한테 너무 포커스가 맞춰져 있는 것 같아요. 꿈이라고 표현하면서 엄마의 욕망과 로망을 강요하니까 아이들은 힘들어해요. 엄마는 꿈 안 꾸어요, 마을은 꿈 안 꾸어요, 학교는 어떠한 학교가 될지 꿈 안 꾸어요. 아파트 평수를 넓히고 중계동으로 이사 가겠다는 경쟁은 하지만, 어떻게 살 것인지는 꿈을 안 꾸어요. 저희가 꿈을 강조하는 건 달라요. 5월 10일 ‘와글와글 마을에서 신나게 놀아보자’ 행사에는 마을의 공동가치와 약속 9가지를 발표할 예정이에요.

꿈 이야기에서 중요한 이야기를 해 준 것 같아요. 아이들한테만 자꾸 꿈을 가지라고 강요하다 보니까 법륜스님 즉문즉설 강연회에서 대학생, 사회인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꿈이 없는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런 질문을 많이 해요. 꿈이 없거나 좋아하는 게 없으면 비정상으로 여기는 사회분위기가 되었어요.

어떻게 살지를 궁리 안 해보고, 밥벌이뿐만 아니라 진로면 어떻게 살지 방향이잖아요. 김바다작가 만나니 이렇게 살아도 먹고 사는구나, 덴마크 샘(이승훈센터장 별명) 만나보니 이렇게 살아도 밥먹고 사는구나, 사람들이 몰려서 사는데 내 성취가 많았으면 좋겠어요. 어떻게 사회복지 9급 공무원 되겠다고 말하는 게 꿈인가요? 꿈이란 게 공동체와 만나야 되는 거 같아요. 너무 사적이고 개인적인 꿈만 이야기하고 있어서, 저희가 꿈마을공동체를 만들었어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꿈만을 강조하면 삶이 너무 한정될 것 같다고 고개를 갸웃갸웃하고 있었는데요. 오늘 들어보니까 어떻게 살아야할지 방향만 잡고 가치관이 탄탄하게 세워져 있으면 걱정을 안 해도 될 것 같네요. 옛날과 달라서 한 길로만 가야할 필요는 없고, 이 길로 가다가 저 길로 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몇 년 뒤에 뭘 하고 있을지 몰라요. 저도 법륜스님 글들을 보고 영감을 많이 받는데요. 스님이 앞으로 미래 사회가 어떻게 바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애들한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고 다 말한다고 하더라고요. 미래사회는 엄마가 살아본 세상의 해법으로 되는 사회가 아니고, 자기 앞가림 잘하는 인간이 필요하다고 하시고요. 그래서 설거지도 하고 그런 것들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들을 모두 남이 대신해 주잖아요. 자기 앞에 닥친 문제를 자기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인간이 될까 걱정이 되고요.

 도시에서 자란 사람들이 좀 더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요즘은 일을 안 시키고 공부만 해라고 하잖아요. 일도 해 봐야 요령이 생겨서 자기 앞에 닥쳐도 척척 잘 해 나갈 수 있는데 안 해보니까 모르지요.

그래서 저희는 청소년들이 스스로 하게끔 많이 해요. 청소년도, 주민도, 스스로 하게 해야 역량이 커지는 것 같아요.

 청소년들이 성취감을 느낄 기회를 박탈하는 것 같다는 생각할 때가 있어요.

갈수록 심해지지요. 좋은 서비스를 쫓아가는 것이 스스로 할 수 없게 만드는 것 같아요. 박근혜정부에서 돌봄을 저녁까지 하고, 이런저런 서비스가 계속 늘어나요. 어리고 가난하고 못 살면 더 서비스가 많아져요. 예전에는 엄마가 올 때까지 놀이터에서 친구들하고 같이 어울려 놀며 엄마를 기다리며 두꺼비 집 짓고, 오늘은 뭐하고 놀까, 오늘 하루는 어떻게 설계할까, 이런게 가능한 사회였는데요. 서비스가 많아지면서 아이들이 어른의 지도아래 다 통제되고 있어요. 사적인 생활은 없어요. 어른들로부터 통제받지 않는 시간에 마음도 크고, 판단력도 크고, 그러는데 그런 걸 다 빼앗아간다는 걸 서비스는 체크해 내지를 못해요.

세월호에서도 아이들한테 가만히 있어라, 앉아 있어라, 그러니까 다 앉아있었던 거잖아요. 우리 사회가 어린 아이 때부터 앉아있도록 훈련시키고, 서비스가 어른의 판단하에 제공되게 다 한 건데요. 어릴 때부터 놀이터에 가서 자기가 판단해서 이 상황에서는 이렇게 균형을 잡아야 되겠구나, 친구와 빠져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 그런 판단력이나 선택할 수 있는 힘을 교육과정에서 우리사회가 못 키워줬다고 생각해요. 이 사건과 연결시키는 건 너무 비약인 것 같지만요.

젊은 엄마들은 아이들이 통제하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좋은 서비스는 10분 단위로, 5분 단위로, 뭔가를 계속 줘야한다고 그러고 거기에 따라오고 그래요.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학교에 가서까지요. 언제 마음은 크고 언제 자기 판단할 시간을 가지겠나? 그리고 학교 끝나면 학원차가 와서 데려가고, 또 다른 학원가고, 엄마 오면 오늘 하루 뭐 했는지 꼬치꼬치 물어보고 그러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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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 개관 3주년 기념식을 마치고

젊은 엄마들도 아이 양육에 대해 잘 모르는데 규격화해서 너무 틀 속에서 키우고 해요. 젊은 엄마들 교육도 필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저희가 도서관학교에서 이야기해요. 학원도 잘 안 보내시는 분이 많아서 엄마와 관계를 밀접하게 갖고 있고요. 그렇게 시도를 하고 있는데 아직은 저쪽에서 당기는 힘이 훨씬 세니까요.

직장 안다니고 엄마가 돌보는 아이는 좀 괜찮은데 직장 다니는 엄마가 있는 집 아이는 어쩔 수 없이 맡겨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요? 돌봄 시간도 밤 10시까지 늘리고 아이들을 부모와 있는 시간을 뺏고 있어요. 일하는 시간을 줄여서 부모와 함께 하는 시간을 늘려야 하는데요.

서비스로 대응을 해 버려요. 혼자 생각해 본 건데 몇 세 이하 어린이는 부모 중 한 사람은 어린이를 보호할 책무가 있다고 정하고, 아예 일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육아수당으로 보충해주는 방식을 가는 게 낫지, 돌봄 서비스를 확충하는 것이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육아수당을 주고 아이를 돌볼 수 있게 해야지, 정 그렇게 못하는 가정에는 다른 대책을 강구하는 방안으로 해야 하고요. 아이 키우기가 힘들고 희생을 해야 하니까 엄마로 아이를 키워본 게 아니니까 조심스럽긴 해요.

 앞으로 꼭 하고 싶은 일이나, 내 인생에 있어서 하고 싶은 것들이 있으신지요?

일로는 길게 생각을 못 했고, 공릉동에 북클럽, 문화클럽 활동이 가장 활발한 동네가 되었으면 해요. 책으로 만나서 이야기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로 만나서 이야기하고, 이런 동네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꿈을 꿔요. 북클럽을 우리 동네에 한 100개쯤 만들어보자, 문화클럽 50개쯤 만들어보자, 그게 꼭 센터에 거점을 두고 있지 않아도 각 동네에 만들어졌으면 합니다. 그런게 유난히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꿈마을을 보여줄 수 있는 힘인 것 같아요.

각자가 책을 읽으며 자기 삶을 성찰하며 사는 것이고 추구해야 하는 것이 꿈이에요. 바쁠 때는 우리 집 아이 좀 봐줘, 저녁밥 좀 먹여줘, 하면서 서로 아이를 맡길 수도 있거든요. 그런 동네가 교육력이 있는 동네라는 생각이 들어요. 마을에 사람들을 계속 만나고 그 사람들이 마을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연결하고 있는데, 그 중에 북클럽, 문화클럽을 많이 만드는 것이에요.

개인적으로는 ‘아이들이 꿈이 뭐냐고 물어보니까 대외적으로 꿈이 뭐다’라고 말해 줄 수 있는 것은 나이가 들어도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사는 삶이면 좋겠다는 거고요.

해보고 싶은 것들은 지금 공릉동에 전세가가 많이 올라서 남양주 조안면으로 이사갔거든요. 거기 가니까 좋더라고요. 싼 전세가 나서 갔는데 가서 보니까 아이들이 풀어놓고 키우기가 좋더라고요. 그래서 내 집이 한 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또 제 별명이 덴마크(머리가 커서 붙은 별명)거든요. 덴마크에 가서 1년 정도 살아보고 싶어요. 우리가 어릴 때는 그런 나라들은 인간이 소외되고 자살률이 높다고 했는데, 복지국가라고 좋은 게 아니라고 했는데, 현재는 그 나라들보다 우리나라 자살률이 훨씬 높아졌어요. 또 거기는 안 가봐서 환상을 꿈꾸는지 모르지만  공동체나 사회적 합의가 잘 되어 있다고 하니까, 어떻게 하나 궁금하기도 해서 가보고 싶어요.

청소년들한테 권해주고 싶은 책이 있다면요?

『나무를 심은 사람』, 청년 때 읽은 책인데 감동이었어요.

청소년 시기는 어떠했나요?

암울했어요. 아버지가 안양에서 닭장사, 개장사를 하다가 망해먹고는 부산 다대포에 어부한다고 내려가셨어요. 그게 초등학교 2학년 때였어요. 전학 가니까 반 아이들이 놀렸죠. 서울내기다마내기맛좋은고래고기 하면서요. 맨날 놀림 받고, 중‧고등학교 때는 아버지가 미웠죠. 베트남전쟁도 다녀오셨고, 술을 드시면 폭력적인 게 올라와서, 아버지가 굉장히 미웠고, 전쟁도 미웠어요.

 전쟁에 참전해서 병을 얻어오셨나요?

네, 고엽제로 인한 후유증이죠. 술을 드시면 전쟁 외상 후유증이 나왔어요. 고등학교 때 안정효의 『하얀 전쟁』이라는 소설이 나왔는데 우리 아버지 모습 같았어요. 그러면서 아버지가 조금 이해가 되고, 아버지보다 전쟁이 밉기 시작했어요. 그때 선생님이 걸프전을 교련시간에 말씀하시는데 아주 쉽게쉽게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전쟁에 예민했던 시기인데 교련복 입고 훈련을 받는 시간이 굉장히 힘들었어요. 학교에서는 이런 상황이 배려되지 않잖아요? 청소년기 때에는 아버지도 밉고, 전쟁도 미웠고, 남보다 조금 더 민감한 감수성을 가졌어요. 그런 문제에 대해 소수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가 크면 세상을 좀 바꿔보자는 이야기를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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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릉청소년정보센터에는 청소년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는데 중점적으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있나요?

저희가 ‘시작된 변화’라는 프로그램인데요. ‘더 나은 세상 가능하다’는 사실을 믿고, 그 시작은 일상에서부터 출발되어야 한다고 봐요. 청소년들이 일상에서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에 어떠한 변화를 만들어낼 것인가를 구상하고, 실천하는 사업인데요. 저의 어릴 때 경험이 녹아있기도 한데요. 청소년기에는 문제가 많이 보일 때인데, 조용히 입 다물고 있어라, 하는 분위기여서 저도 입 다물고 있을 때가 많았어요. 청소년들이 그걸 제대로 만들어내면 경험이 최고의 학습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떤 아이들은 환경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으면 ‘환경공학 공부하고, 환경단체에 들어가고, 환경을 살리는 기업에 들어가서 일을 하면 되지’가 아니라, 지금 일상에서 그 문제를 어떻게 풀어낼 수 있는지를 실마리를 찾게 하고, 도전하게끔 해서 경험치가 쌓여야지 나중에도 그렇게 살 수가 있어요. 실제적으로 학습도 된다고 생각해서 하는 프로젝트인데 이 활동이 굉장히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어요.

저는 고등학교 때 연극을 했거든요. 아버지에 대한 마음, 전쟁, 전교조문제, 그런 문제들을 바탕으로 해서 극본을 쓰니까 잘 써져요. 대중 앞에 나가서 연극공연을 할 수도 있게 되었고요. 지금의 청소년들은 그만한 능력이 충분히 있어요. 길만 터 줬더니 여러 가지 활동들을 하고 있어요. 실제로 참여한 청소년들이 잘 커는 것 같아요. 진학도 잘하고, 취업도 잘 되는 것 같아요. 자기소개서를 쓴 걸 보면 그냥 학원만 다닌 청소년들과는 경험치가 다르니까요.

이렇게 자란 청소년들이 지도자로 참여하고 있는데, 10년이 지나면 또다른 변화를 스스로 만들어나갈 거라고 기대를 해요. 다른 일들도 비슷한 방식으로 스스로 하게끔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어요. 청소년기에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그렇게 생각한대로 살더라고요.

작년에 ‘시작된 변화’ 발표대회를 할 때 예선, 본선을 모두 지켜보았는데 정말 좋은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자료집을 주면서 중‧고등학교 선생님들에게 꼭 학생들을 참여시키라고 홍보하고 다녔다. 올해에도 많은 학생들이 참여할 것으로 생각하고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가 된다.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시고 좋은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시 : 2014년 5월 2일 오전 11시
장소 : 공릉청소년문화정보센터 센터장실
글, 사진 : 김바다 기자

나우온 ⓒ 김바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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