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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4/07/08 | 글쓴이 김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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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 10] 서주석 전 청와대안보수석

갑오년이 상반기 절반을 보내고 후반기 절반이 남았다. 상반기 절반을 보내는 동안 많은 사건 사고로 인해 6개월이 아닌 6년을 살아낸 기분이 든다는 분이 많다. 박근혜대통령이 신년사에서 ‘통일은 대박이다’고 하자 여기저기서 ‘통일대박론’을 거론하며 통일의 메아리가 끊이지 않는다. 특히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니 통일이란 단어를 붙인 행사가 하루가 멀다하고 열리는 것 같다. 이런 6월에 휴먼북 전 청와대안보수석 서주석 박사를 인터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금요통일포럼이 열리기 전 흥사단 회의실에서 서주석 박사와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서주석 박사님을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서울대학교에서 국제정치학(외교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연구자가 되었어요. 공무원(외교관)이 될 수 있었으나, 공부를 통해 한국의 외교와 안보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일이 더 바람직한 것으로 보고 연구원이 되었어요. 대통령비서실 안보정책수석,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기획실장을 역임했어요. 현재는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으로 있고, 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 노원포럼 공동대표, 한국전쟁학회 회장을 맡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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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주석 박사의 산책길이 되는 홍릉숲

6·25 한국전쟁 발발 64주년을 맞아 6월에 여러 단체에서 통일에 관한 세미나를 많이 여는 걸 보았습니다. 통일을 이야기하면서 조금이라도 정부의 잘못을 비판하면 ‘종북이냐? 빨갱이냐?’ 라고 하는데 박사님이 종북에 대한 정의를 좀 내려주세요.

-종북은 글자 그대로 보면 북한을 따르는 사람이거든요. 북한체제와 북한 정책을 무조건 따르는 사람들이 종북입니다. 대한민국에 그런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종북이라는 말은 90년대에는 없던 말입니다. 2000년대 민주노동당의 노선투쟁 과정에서 처음 쓰였던 표현이라고 알려져 있어요. 진보정당 간에 상대방을 비판하기 위해서 썼던 표현들을 지금은 보수진영에서 진보진영 전체를 표현하는 걸로 되어 있는데, 글자 그대로의 종북론자는 아마 좌파 중에 극히 일부 있을까 말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종북을 ‘북한을 이해하자’는 진보진영 전체를 매도한다는 것으로 표현한다면 그건 잘못된 것입니다. 이게 정치적으로 좀 혼동일 뿐 아니라 악용되고 있는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할머니가 그런 말씀을 하세요. 언론이 이끄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따르는 분들은 설득이 잘 안 됩니다.

-지금의 북한체제를 ‘이거 잘 됐다’ 그럴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1980년대, 우리는 미국에 의해서 일정하게 영향을 받는데 북한은 그렇지 않으니까, 김일성 주체사상을 우리의 해방 논리로 삼아야 한다는 일단의 운동가들이 있었어요. 이른바 주사파죠. 그런데 주사파들도 북한이 1990년대 들어와서 경제적으로 아주 큰 곤경에 처하고, 북한이 스스로 헤쳐 나가지 못하는 상황을 보고서는 현재의 북한 체제에 대해 실망을 많이 했거든요.

1990년대 이후에 체제와 정책에 대해서 ‘잘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어요. 제 생각에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고요. 김정일의 권력세습에 이어서 김정은도 권력 세습을 하게 되는데 권력세습까지도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다만 종북이라는 딱지를 붙여서 이야기할 때는 북한의 행동을 하나하나 비판하지 않는 걸 보고 ‘왜 너는 북한을 비판하지 않느냐’고 하면서 종북 딱지를 붙이는데요.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이것저것 따지고 해 나갈 수도 있겠지요? 우리 원칙대로 따지지 않고 북한하고 일단은 접촉해야 하니까 만나서 대화하면서 서서히 북한이 바뀌는 것을 생각할 수 있어요. 그게 바로 김대중 대통령이 이야기했던 햇볕정책이죠. 그게 방법론의 차이이지요. 햇볕정책에 대해서는 비판을 많이 받았어요. 나중에 6·15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나서 남북 간 양쪽이, 지금의 체제는 그대로 두면서 교류는 서로 심화해 나가자고 서로 합의를 했거든요. 그 합의 이후에는 그런 논란이 적었지만 북한도 햇볕정책을 비판했어요. 햇볕정책 식의 접근을 북측이 싫어해요. 햇볕정책을 종북이라고 몰아붙이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부분은 혼동과 혼용이 있어요.

남남갈등이 갈수록 심해지는데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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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감주 나무

-남남갈등은 사실은 과거에는 지금처럼 심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서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이 남북대화를 했을 때, 진보적인 인사도 좋아하고 보수적인 인사도 다 따랐던 겁니다. 1980년대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 남북대화를 추진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노태우 대통령 때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에 북방정책이라고 해서 공산권 국가들하고 수교하고, 1990년 91년, 남북대화를 아주 광범위하게 해서 남북한 기본합의서를 만들었을 때도 다 찬성했어요.

그런데 그 뒤에 상황이 악화되기 시작했어요. 김영삼 대통령 때라고 생각하는데 남북관계를 냉, 온탕으로 극단을 오갔던 분입니다. 취임사에 ‘민족보다 더 나은 동맹은 없다’라며 남북관계 개선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썼죠.

그러다가 북한이 핵개발을 가속화하고 NPT(핵확산금지조약)를 탈퇴하면서 김영삼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서 실망과 분노를 표현하기 시작합니다. ‘핵을 가진 상대와는 악수할 수 없다’는 그런 말을 했어요.

핵문제가 93년, 94년, 아주 심화되는 가운데서도 한국정부는 가장 강경한 입장만 고수했어요. 미국정부가 오히려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어요. 그러다가 결국은 상황이 악화되어서 ‘핵위기’라는 말이 나왔고,  핵전쟁 가능성까지 제기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서 대북제재와 전쟁 위험에 처해서 미국의 카터 전대통령이 북한에 가서 김일성과 담판을 짓고, 북미 고위급 회담을 하기로 남북 정상회담까지 하기로 주선을 했죠. 카터 대통령의 중재로 남북정상이 회담을 하기로 했는데, 그 뒤 바로 김일성이 사망하게 되었죠.

그래서 남북관계 개선이 힘들어지게 되었는데, 94년도부터 북한에 대홍수가 나서 북한 식량생산이 급감하게 됩니다. 단순히 홍수의 문제가 아니라 북한의 전반적인 농업의 문제였고, 북한의 경제난 때문에 북한이 외화를 벌어들일 수 없어서 식량을 사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식량난을 해결할 능력이 없어지죠. 대규모 기아가 발생하게 되고, 1995년도에 김영삼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식량지원을 하게 됩니다. 15만톤의 쌀 지원을 했거든요.

그 지원과정에서 혼선들이 발생하게 되었어요. 이른바 인공기 사건이 벌어지면서 대북 쌀 지원 자체는 국민들이 인도적인 지원을 반대하지 않았는데 북한과의 그런 마찰을 보면서 김영삼 대통령에 대한 비난이 커지게 되었고, 그 뒤로는 일체의 대북 지원을 하지 않고, 북한에 정권 붕괴만을 기다리는 상황이 되었죠. 대북정책과 정치를 연결시킨 사례가 김영삼 대통령 때라고 생각됩니다.

그렇게 되면서 대북정책을 둘러싼 진보와 보수의 입장 차이가 커지게 되고 그게 어떻게 보면 진보와 보수간의 인식의 차이를 가장 특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되었죠. 1998년부터 2008년까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민주정권이 있게 되면서 대북포용정책으로 가게 되었죠.

포용정책의 와중에 남북관계는 개선되었습니다만, 북미관계 개선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핵개발을 통해서 미국을 압박하는 입장을 취하게 되고 그러면서 남북관계 개선이 되면서 북한의 핵화라는 문제가 부각되면서 반대 여론이 등장하게 되고, 이명박 정권과 지금 정권까지 이어지는 보수적인 정권의 출연 배경이 되었어요. 남남갈등은 대북 포용정책 시행되면서 더 심해졌고 지금도 남남갈등이 엄청 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럼 점점 멀어지는 남북관계를 개선시킬 방법을 말씀해 주세요.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길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당장 평화를 가져오는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통일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평화와 통일을 수단으로써 남북관계 개선을 하자는 것인데 남북관계 개선을 둘러싼 논란이 있는 건 정말 안타가운 것이죠. 남남갈등은 반드시 극복되어야 되고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우리가 북한보다 잘 사니까 열린 마음으로 북한에 접근해야 될 것입니다. 북한도 생떼 부리는 식이 아닌 지금보다는 남쪽 사회와 남쪽 입장을 이해하고, 좀 더 예의를 지키는 자세로 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쪽의 변화와 더불어서 사회의 전반적인 이해와 소통의 확대와 더불어서 정부정책의 유연성, 북한의 태도 등이 전반적으로 바뀌어야 풀릴 수 있는 문제입니다. 장기적으로 해결되기는 힘들 겁니다. 지금은 지나치게 정치화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을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발표 자료에 따르면 북한 주민에게 ‘북한 붕괴 시 누구와 손 잡겠느냐’고 물었더니 한국 27.1%, 중국 31.5% 라고 했어요. 어떻게 하면 북한 주민의 남한에 대한 호감도와 한민족이라는 인식을 높이고 통일로 갈 수 있을까요?

-통일대박론에 대해 잠깐 말씀드리면 통일에 대한 관심, 열의가 많이 줄어든 상태에서 통일대박론은 그것을 일정하게 되살리는데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과 그 이후만 생각하다 보니까 통일에 이르는 과정에 대한 접근이 상대적으로 부족해요. 그리고 구체적으로는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방법론 모색이라든지, 남북관계 개선을 통일과정으로 이끄는 것에 대한 전문적인 접근 없이, 일정정도 급변사태에 대한 기대가 있는 게 사실인 것 같아요. 어쨌든 통일대박론이 현실적으로 의미를 더 갖기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남북관계가 시도되어야 되고, 관계 개선을 통해서 그것을 통일로 이끄는 그런 과정에 대한 정교한 과정관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이 급변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북한을 흡수할 거라는 것보다 정교한 과정관리가 필요할 거라고 봅니다.

북한 주민의 남한에 대한 인식은 과거부터 그리 좋지는 않았어요. 1950년 전쟁 이후에 북한은 50년대, 60년대에 꽤 빨리 발전을 했습니다. 남쪽은 발전이 늦었지요. 1970년대 초에 들어와서야 북한을 따라잡았다고 경제통계에 나와 있어요. 북한은 70년대, 80년대 이때까지만 해도 ‘미제의 식민지이고, 거지들의 소굴이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90년대 들어와서 북한 경제가 급락하면서 남쪽은 경제적으로 번영을 하게 되면서 남쪽의 번영을 서서히 알게 되었어요.

2000년부터 대북 쌀 지원 협상이 진행되어 처음에는 백지푸대로 갔어요. 진행이 되면서 북쪽에서 <쌀 대한민국>이라는 푸대를 북한의 경제난이 심해져 유리가 없으니까 유리창 대신에 쌀푸대를 붙여놓았어요. 대한민국이라고 씌어있는 쌀푸대 봉지가 집집마다 유리창에 붙어 있는 겁니다. 그런 상황이 좀더 진행되었다면 (정치적으로 북미간의 관계가 나쁘니까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남쪽의 경제적인 상황, 경제적 우위에 대한 인식은 좀더 확대될 수 있었을 것이고, 그것이 북한주민들에게 남한에 대한 호감으로 바뀌는데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에 2000년부터 2008년까지 지속적으로 북한에 쌀과 비료를 지원했었거든요. 2006년도에 북한의 핵개발로 인해서 쌀 지원이 중단된 경우가 있었어요.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이후 논란 끝에 이명박 정부에서 대북 쌀지원을 전면 중단했어요. 그렇게 되면서 주던 걸 안 주는 상황이 되었죠. 북쪽의 남쪽에 대한 인식은 경제적으로 좀 잘 사는데 정치적으로는 미국에 예속되어 있고, 남쪽은 잘 살면서 동포는 돌보지 않는 몰인정한 집단이라는 인식이 북한 주민의 밑바탕에 깔려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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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쉽게 해결되지는 않아요. 장기지속적인 남북관계 개선, 대북지원 만으로만 해결될 수 있을 거예요. 동서독이 통일 될 때 서독은 동독에 대해 20년간 한국의 대북지원(대북지원을 많이 했을 때)의 15배에서 20배 정도로 동독지원을 했어요. 지속적으로 지원을 했고, 당시 동독에서는 방송 개방이 되어 있어서 서독의 상황을 알 수 있었죠. 동독 사람들이 1989년도에 공산국가에서 민주혁명이 일어나 새로 등장한 체제에서 동독 사람들이 서독이 흡수통일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북한의 남한에 대한 인식을 생각해 보면 아마도 급변사태가 되었든, 정상적인 합의에 의한 통일이 되었든 북한 주민의 선택이란 것이 상당히 중요한 결정적인 변수일 것인데, 북한의 대남인식이 호의적이지 못합니다. 저는 그걸 아마 급변사태가 된다고 하더라도, 북한의 또다른 정권, 독재정권의 출현이나, 친중정권이 출현할 가능성이 크지 남쪽이 자동적으로 북한을 접수하는 상황은 거의 오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면에서 이 문제는 정말 지속적으로 잘 풀어나가야 합니다. 한마디 더 말씀 드리면 탈북자가 한국에 25000명 이상 와 있습니다. 노원구에도 많이 살고 있죠. 이런 분들이 한국사회에 와서 적응하는데 엄청 힘들거든요. 저는 아마 탈북자, 북한 이탈주민들을 한국사회에 제대로 정착시키는데 우리가 성공할 수 있다면 그게 북한 주민들에게 남한하고 통일을 해도 당신들이 잘 살 수 있다는 모델 케이스로 작용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 적극적이고 아주 세밀한 계획을 세워서 북한 이탈주민에 대한 아주 적극적인 정착지원, 한국 사회 적응지원을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남한 사람들은 통일을 바라는 분들도 있지만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분위기가 팽배되어 있습니다. 남한의 경제가 침체되어서 청년들이 취업을 못하는 상황인데 그 해법으로 통일을 해야 된다고 말하는데 통일을 하는 게 자식들의 미래를 열어줄 수 있다는 설득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한국은요, 통일을 하지 않으면 2-30년 후에는 성장의 벽, 성장절벽에 도달할거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을 보이는 나라이고,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가 되는 사회로 가고 있어요. 앞으로 2025년, 10년 후면 초고령화 사회가 되어서 젊은 경제 인구가 다수의 노령인구를 먹여 살려야 합니다. 성장여력을 극적으로 잃고 있어요.

그런 면에서 적극적으로 이민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 사회를 다문화 사회라고 하는데 외국인 비율이 2%밖에 안 되고 크게 늘지 않고 있어요. 우리 사회는 순혈주의 전통이 있어서 외국으로부터 노동력 수입이 힘들어요. 그래서 해결책은 통일이라고 할 수 있어요. 북한은 인구증가율이 높고, 북한과 남한의 통합으로 통일이 되면 북한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돈이 드는데, 그 상황을 극복하면 성장 잠재력 인구문제 완화, 절벽으로 부담하는 비용보다 통일 비용이 들지만 통일의 경제적 편익이 있어요. 남북문제, 국내 정치적 갈등이 가져다주는 군사력, 국방비, 낭비, 그런 것들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것입니다. 반쪽 짜리 국가로 간다면 민족사에 결정적인 과오가 돼요. 우리는 크나큰 후회를 할 것입니다. 통일로 극복해야 될 것입니다. 독일이 통일함으로서 유럽 전체에서 중심국가가 되지 않았어요?

 통일 이야기를 하면 끝이 없습니다. 박사님의 좌우명, 가훈이 있으면 소개해 주세요.

-대인춘풍지기추상 (對人春風持己秋霜), 남에게는 봄바람처럼 내겐 가을서리처럼

인생의 책 또는 최근 읽은 감동받은 책을 추천해 주세요.

-빌 브라이슨, 『거의 모든 것의 역사』, 가치, 2003, 망원경과 현미경으로 들여다 본 자연과 인간에 대한 대조망을 하게 하는 책입니다.

서주석 블루베리1

직접 심고 가꾸는 블루베리

박사님이 이 생에서 꼭 하고 싶은 버킷리스트 3가지가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서울 인근에 ‘타샤의 정원’ 만들기, 북한의 민둥산에 나무 심기, 희말라야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등정하기입니다.

제가 자그마한 야산을 가꾸고 있는데 올해 초 간벌을 하고 산을 정리해서 편백나무, 측백나무, 구상나무, 일부 유실수를 심었어요. 150주 정도 심었는데 매년 심어서 10년간 1500주 심을 예정이에요. 일단 산에다 나무를 심고 야생화를 심어서 ‘타샤의 정원’을 만들어볼까 합니다.

그리고 ‘겨레의 숲’, 식목 조림하는 단체의 이사로 있어요. 북한의 민둥산에 나무심기 사업을 벌여서 북한의 민둥산에 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숲으로 가꾸고 싶어요.

또 여행을 많이 하고 등산 트레킹을 좋아해서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가 5300m인데 거기를 가볼까 합니다.

멋진 ‘타샤의 정원’ 푸르른 북한의 산, 희말라야가 박사님의 뒤, 저멀리 떨어진 곳에서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눌한 질문에 명확한 답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시 : 2014년 6월 27일 오후 6시30분
장소 : 흥사단 회의실

글 : 김바다 기자
자료 사진 제공 : https://www.facebook.com/cssuh

나우온 ⓒ 김바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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