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이희재

등록일 2015/04/29 | 글쓴이 김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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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재 만화가와 쾨테 콜비츠를 만나다

 

4월19일까지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에서 전시되는 쾨테 콜비츠전을 보러 가는 길은 비에 흠뻑 젖어 있었다. 참여미술의 선각자로 불리고 1980년대 한국의 민중미술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세계적인 화가 쾨테 콜비츠의 작품이 노원에서 전시되고 관람을 할 수 있다는 건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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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4일 오후 3시에, 노원에 살고 있는 이희재 만화가와 함께 쾨테 콜비츠의 작품세계를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시간되는 노원구 주민이 전시장 로비에서 모이기로 했다.

함께 관람하기로 한 분들을 기다리는 동안 한국예술종합학교 에니메이션학과 학생들이 교수님과 전시회 관람을 왔다. 마침 지도교수인 주완수 교수님이 이희재 만화가의 후배라 학생들의 인사도 받고, 지난 주 중국에 다녀온 뒤의 소감을 학생들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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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다음의 1000만 독자를 상대로 작품을 그리지 말고, 나의 무대는 중국이란 2-3억의 독자를 겨냥해서 작품을 하세요!” 하며 학생들에게 시야를 넓게 가지고 작품 활동을 하라고 격려하셨다. 그리고 학생들과 단체 사진도 찍으셨다.

비 내리는 평일 대낮이라 관람객이 적을 거라는 걱정은 학생들의 단체 관람이 많아서 싹 날아갔다. 대가의 판화전은 1914년 전쟁 전의 작품이 전시된 2층부터 관람을 하고 1층으로 내려와서 전쟁 후의 작품도 관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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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재 만화가는 쾨테 콜비츠의 작품 세계의 영향은 경중이 있겠지만 한국의 많은 화가들이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쾨테 콜비츠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그림 속 인물들의 고통과 고뇌가 내 몸에 바로 투사가 된 다. 20세기에도 인간이 만든 세상에서 권력자에 의해 인간답지 못한 삶을 강요받고 노예와 다를 바 없는 삶을 연명해야 했다. 더욱 비참하게 겨우 입에 풀칠만 할 수 있게 해야만 더욱 복종을 잘 하니까 굴종을 강요하는 통치가 계속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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쾨테 콜비츠는 <근심>이라는 작품을 그리고 이틀 뒤에 아들의 전사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제1차 대전에서 참전한 16살의 아들을 잃고, 제2차 대전에서 또 참전한 손자까지 잃어야 했던 쾨테 콜비츠는 그림과 판화, 조각에서 전쟁의 비참함을 21세기를 살고 있는 현재의 인간들에게도 고발하고 있다.

죽은 아들을 안고 있는 한 어머니를 조각한 피에타 앞에서 이희재 만화가는 동명의 영화 <피에타>를 보고 김기덕 감독의 실력을 인정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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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이 끝나고 2층 카페에 앉아서 관람후기를 나누는 시간에 이희재 만화가는 밀려드는 사인 요청에도 마다않고 정성스럽게 그림을 그려 주셨다. 두 어린이가 참석했는데 일일이 이름 뒤에 ‘만세!’라는 단어를 넣어 사인을 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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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갈 때마다 붓펜으로 스케치해 온 그림이 병풍 같아서 펼치고 기념사진도 찍고, 어릴 때부터 이희재 만화가의 만화를 보며 자랐다는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 두 명에게도 사인을 해 주셨다.

같은 노원에 유명한 만화가가 계시고, 함께 쾨테 콜비츠 전을 볼 수 있어서 좋았고, 화가, 판화가, 조각가인 쾨테 콜비츠를 더 잘 알 수 있었던 알찬 시간이었다.

 

이희재 만화가는 1952년 11월 16일 전라남도 완도에서 출생했다.
현재 (재)한국만화영상진흥원 이사장이며 제40회 앙굴렘국제만화페스티벌 ‘한국만화특별전’ 실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주요작품으로는 <간판스타>, <악동이>, <아이코 악동이>, <만화 삼국지>, <감동 한국사>, <만화 아홉 살 인생>과 동화 <아홉살 인생>, <생명이 들려준 이야기><무기 팔지 마세요>에 그림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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