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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5/08/02 | 글쓴이 하영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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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권의 책, (1) 이희재] ‘상상력과 시대공감’을 담아온 만화계 큰 나무

 

20150729_181819한국 만화계의 큰 어른이 노원에 산다. 만화가 이희재. 84년부터 노원에 살았다.
‘악동이’ 아빠로, 50여년 ‘바른’ 만화만을 생각하며 살았다. 대학은 가보지도 않았지만, 세상에 대한 안목이 그 누구보다 깊고 넓다. 그의 만평 ‘세상수첩’은 ‘진실’의 눈으로 그려졌다.

바른만화연구회 회장이며,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이사장으로 부천국제만화축제를 이끌어 왔다. 2015년 ‘노원탈축제’ 추진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노원휴먼라이브러리 허정숙 관장을 비롯한 취재단은 7월 29일 수락산역 근처에 있는 이희재 작업실을 찾았다. 3시간여 이미 ‘한권의 책’이 되어있는 만화가 이희재의 인생 이야기, 만화 이야기, 가슴을 울린 ‘한권의 책’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었다.

 20130715185008447-이희재만화 염치가

‘부천만화축제’가 성공한 이유는

‘관’ 중심의 축제에서 탈피하여, 만화 전문가집단 중심으로 꾸려온 것이 성공의 비결이다. 부천이라는 소도시에 지금은 만화가 400여명이 몰려있는 ‘만화밸리’를 형성했다. 처음에는 작은 지자체 예산을 만화에 투자하는 것이 무모하게만 보였다. 결국 모두가 이익이 되는 성공모델을 만들었다. 핵심은 ‘자발성’이다.

만화계의 어른으로, ‘만화’에 대해 한마디 하신다면   

20150729_153157단속 검열, 국가로부터 만화는 억압을 받아 왔지만 대중들의 사랑으로 살아남았다.
만화가 ‘강풀’은 새로운 신호탄을 올렸다. 200여 출판사를 돌아다녔지만, 아무도 출판해주지 않았던 그의 만화는 ‘인터넷’ 세상에서 꽃을 피웠다.
지금 포털에서만 월평균 2천만명이 만화 독자이다. 만화 정책도 다시 세워져야 한다. 윤태호의 ‘미생’은 장그래법을 만들 정도로 국회의원 10명 이상의 몫을 했다.
문화예술진흥법에서 만화는 ‘기타’로 분류되어 있었다. 2014년 드디어 ‘만화’가 시, 소설처럼 독립적인 문화양식으로 명시되도록 개정되었다. 만화가 어린이날 화형식 대상으로 취급받아온 과거에서 이제는 벗어나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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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로서의 인생을 돌아본다면   

나는 만화 작업이 언제나 즐겁고 행복했다.
만화가는 이야기와 더불어 영상이 그려져야 한다. 글 공부만 중시하던 세상은 지나갔다. ‘스토리’와 ‘형상화’ 능력이 중시되는 사회다. 만화가에게 ‘상상력’은 핵심능력이다.
만화가가 되려는 사람은 ‘귀가 넓었으면’ 좋겠다. 많은 것을 들어야 한다. 그것들이 뿌리가 되어 상상의 나무가 자란다. 상상력의 뿌리는 과학적 지식이나 역사적 사실같은 꼬투리들이다. 그럴듯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쥬라기공원이나 별에서 온 그대처럼 어찌 보면 황당한 이야기들도 ‘말이 돼!’는 장치들이 있다.
노원 탈축제에서도 ‘탈’이어야 하는 이유가 말이 되게 만들어야 한다. 말뚝이 탈을 ‘마들이’ 탈로 재해석하려는 시도는 나름 ‘말이 되게 만드는 작업’ 같다.
‘말이 되는’ 상상력과 더불어 ‘시대와의 공감’도 중시해 왔다. 나의 스승이셨던 김종래의 ‘엄마 찾아 삼만리’라는 작품은 그 시대와 공명했다. 지금 윤태호의 ‘미생’도 이 시대와 공감한 작품이다. 시대와 공감하는 만화들을 그리려 노력해 왔다.

도봉구에 ‘둘리박물관’이 생겼던데요

악동이

김수정 이현세,  만화계 동기들이다. 둘리가 쌍문동에 살았으니 둘리박물관 말이 된다. 김수정은 만화를 늦게 시작했다. 동물 캐릭터는 창작이 제한받던 시대 상황을 넘어서려는 일종의 편법이었다.
반면 나의 주인공인 ‘악동이’는 조금 다르게 출발했다. 80년대 초 전두환 대통령이 육영재단에게만 유일하게 허가해 주었던 만화잡지로 보물섬 어깨동무 등이 있었다. 세계명작동화만이 그리기가 허용되는 분야였다.
나는 처음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물을 그렸는데, 즐겁지가 않았다. 우연히 ‘악동일기’라는 책을 보고, 이를 그려보겠다 하니 ‘명작인데 하세요’ 하길래 악동이를 시작했다. 악동이는 명작 그리기로 시작하여 아이들의 있는 그대로의 생활을 그려보는 내용으로 점점 진화 발전했다.

언제부터 ‘이희재’가 되었나요

20150729_161806한때 출판사 사장이 강제로 지어준 ‘남제주’라는 필명을 써야 했다. 이희재라는 이름을 찾으려 하다가 출판사에서 잘리고 말았다. 덕분에 육체노동 경험도 했다. 생각보다 힘들어 낭패감도 느꼈다. 할 수 없이 여러 회사에 이력서를 넣어보았고, 팬시전문 문구회사에도 근무했다.
나의 만화 선은 약간 투박한 편이다. 일반적인 만화 선이 깔끔한데 반하여. 그 결과 깔끔한 선을 요구하는 회사와는 어울리지 않았던 셈이다.
중학교 시절, 만화가게에 처음 간 순간 벼락치는 느낌이 왔다. 베낀 그림을 보냈더니 만화책 부록 ‘독자란’에 2등으로 실렸다. 그때부터 만화의 길로 들어섰다. 김용래 같은 선배들의 문하생으로 있다가, 1981년 ‘명인’이란 작품으로 독립 데뷔하여 본명 ‘이희재’로 만화가 인생을 살게 되었다.

지금 주력하는 작업은 무엇인가요

대본소라는 유통경로가 이제 웹이라는 통로로 바뀌었다. 나는 빨리빨리 만화를 그려내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대본소에도 웹에도 적응이 쉽지는 않다. 현재 사마천의 ‘사기’를 그려 웹에다 올려볼 준비를 하고 있다. 미리 많은 양이 준비되어야 그 속도를 따라 잡을 수 있다.

만화가 지망생들에게 한마디 조언을 

난장이책을 많이 읽어라. 그림도 좋아해야 하지만, 알고 보면 만화는 발로 쓰는 직업이다.
만화가는 영원한 비정규직이다.
지금 잘 나가는 미생의 윤태호에게서도 ‘힘드네요’라는 말을 들었다. 고생고생하다가 ‘만끽’이라는 웹진에 ‘이끼’가 연재되어 이제는 잘 풀리려나 생각했는데, 만끽이 문을 닫아 버려 ‘운도 없구나’ 생각했었다. 그 이끼가 포털에 다시 올려지면서 스타가 되었다. 작가는 유통매체와도 잘 만나야 한다.
나는 남들보다 느린 편이다. 지금까지 40여권의 만화책을 펴냈지만, 지금부터 전성기라는 생각으로 부지런히 만화를 그리고 있다.

이희재에게 ‘한권의 책’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다. 그 책은 읽는 순간 가슴으로 들어와 온몸을 휘감았었다.
짧은 문장이 주는 문체의 미학에다가 난장이라는 낮은 존재를 통한 시선이 주는 감동이 있었다. 난장이는 언제나 올려보아야만 하는 존재이다.
제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던 작가는 조세희, 신동엽, 정희성 등이었다. 그 작가들의 작품을 읽으면 심장이 두근거렸다.

[ 노원휴먼라이브러리, 살기좋은 노원, nowonnews 나우온 공동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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