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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6/01/15 | 글쓴이 김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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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 현장답사] 대한민국 임시정부 – (1) 상하이

 

1910년 전후하여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상하이로 모여 들었다. 대한제국 출신인 신규식은 상하이에서 중국혁명에 참가하면서 중국혁명 인사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이를 계기로 국내외 독립운동지도자들이 상하이로 모여 동제사, 신한청년당 등을 결성하여 활동하는 등, 상하이는 해외 독립운동의 주요 근거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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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역사 기반 위에서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고, 이후 대한교민단‧독립신문사‧한국노병회‧병인의용대‧인성학교‧철혈단 등의 많은 독립운동단체들이 조직되어 활동을 전개하다가,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공원 의거 이후 항저우로 이동할 때까지 상하이는 중국 관내지역 독립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1919년 3월 1일 ‘조선의 독립국’임을 선언하는 독립선언이 발표된 후 국내외에서 활동하던 지도자들이 상하이에 모여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결정하고, 이를 유지‧운영하기 위한 임시정부를 수립한 것이다. 이후 임시정부는 1932년 윤봉길의거로 상하이를 떠나 항저우로 이전할 때까지 13년 동안 상하이에서 활동하였다.(나도 백범이다 자료집 발췌)

필자는 청년백범 5기에 탑승하여 2016년 1월 9일부터 13일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부터 일제의 압력을 피해 난징까지 이동한 경로를 따라가는 답사에 함께 했다. 상하이는 100여년 전에도 국제적인 도시였고, 세계의 정치가, 경제인, 금융가들이 모여 들어 정치, 경제, 금융의 중심도시 역할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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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찾아간 대한민국 임시정부 상하이 청사는 상하이의 마지막 청사로 백래니몽 마랑로 보경리 4호에 마련했다. 상하이에서 집세를 감당하기 힘들어 수없이 옮겨 다니다 12번째로 정착한 곳이고, 1932년 5월 항저우로 이전할 때까지 6년간 사용한 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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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은 이곳에서 독립운동을 위해 죽음을 결심하고, 세 가지 일을 한다. 첫째 어린 두 아들에게 유서로 『백범일지』 쓰기, 둘째 독립운동 자금을 얻기 위해 하와이, 멕시코, 쿠바의 사탕수수밭에서 노동자로 일하는 동포에게 편지 쓰기, 셋째 독립운동을 위해 같이 죽을 동지를 구해서 ‘한인애국단’ 조직하기다.(나도 백범이다 자료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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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주년인 2015년에 재개관식에 박근혜 대통령도 참석했고,   4호 한 칸으로는 전시 관람할 수 없어 3‧4‧5호 세 칸을 연결해서 기념관을 꾸며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임시청사를 관람하려는 한국 관람객과 중국 관람객으로 좁은 골목은 붐볐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중국인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로 이용했던 지역은 한국인들은 누구나 한번 씩 다녀가야 하는 성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조금 걸어서 가면 백범의 가족 거주지가 있던 골목이 나온다. 옛 건물을 철거하고 새 건물을 짓고 골목을 정비하였고 그 자리에 고급음식점이 들어서 있었다. 백범이 어머니 곽낙원, 아내 최준례, 두 아들과 살았던 곳이지만 여기서 아내 최준례가 세상을 떠난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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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를 건너면 대한교민단에서 한인 자제들의 교육을 위해 개설한 인성학교가 있던 자리도 역시 고급음식점으로 바뀌어 있다. 옛날 건물의 벽돌을 되사용해서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오래된 건물로 보였다. 옛날 벽돌을 재활용해서 전통건물의 보존효과를 얻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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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찾아간 황포공원에는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으로 붐볐다. 1922년 3얼 28일 의열단원 김익상과 오성륜은 필리핀에서 일본으로 귀환도중 상하이에 도착한 일본 육군대장 다나카를 저격한 의거현장이다. 비록 다나카를 맞히지 못해 의거에 실패했지만 10년 뒤 윤봉길 의거에서는 성공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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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탄 야경

황포강 유람선에 타서 바라보는 와이탄 거리의 야경과 푸동의 야경은 너무나 부러운 광경이었다. 와이탄 거리의 유럽식 건물의 조명과 푸동의 현대식 고층건물을 밝히는 불빛은 황홀 그 자체였다. 상하이에는 겉모양이 같은 건물이 없다고 한다. 건축 허가 단계에서 겉모양이 같은 건물이나 건물에 조명 시설을 하지 않는 건물은 허가를 내어주지 않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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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동 야경

그 당시 상하이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의 마음은 얼마나 복잡하였을까? 조국을 일본에 강탈당하고 목숨을 걸고  이리저리 쫓기며 망명정부를 세우고 유지해나가는 그 고통을 후세인 우리가 어찌감히  알 수 있으리!

 

글‧사진 : 김바다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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