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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6/02/29 | 글쓴이 김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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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현장답사] 대한민국 임시정부 : (7) 난징대학살기념관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본군이 난징을 진격하는 동안 중화민국 정부는 난징을 포기하고 충칭을 임시수도로 정한다고 발표했다. 중국군 사령관 탕셩즈(唐生智) 장군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수도를 지키겠다”고 결사항전을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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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 들어가는 입구에 설치되어 있는 학살 장면을 조각한 조형물

일본군이 난징을 삼면에서 포위하고 좁혀오자 중국 국민당 관리와 부유층들은 재빨리 도시를 빠져나갔다. 난징을 완전포위한 일본군은 중국군 사령관에게 투항하라는 경고를 했다. 탕셩즈 사령과 휘하의 15만 중국군이 투항을 거부하자 12월 10일, 일본군은 “항복하지 않으면 피의 양쯔강을 만들겠다”고 최후통첩을 한다. 중국군이 끝까지 투항을 거부했고, 탕셩즈는 자신의 휘하부대와 양쯔강을 건너 가장 먼저 도망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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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징대학살에 대한 설명글

12월13일 일본군은 난징을 점령했다. 일본군은 난징에 남은 50-60만의 시민들과 군인들을 6주간 처참한 학살을 했다. 12초마다 한 명씩 학살해서 30만 명이나 희생을 당했다. 이 사건을 ‘난징대도살’ 또는 ‘아시안 홀로코스트’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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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텔레비전에서 일본의 지식인 오에 겐자부로가 난징대학살기념관을 방문하며 촬영한 다큐멘터리를 볼 때는, 만인갱 양 옆 벽에 학살된 해골이 수북이 쌓여있어서 충격을 받았다. 지금은 너무 충격적이라 보여주지 않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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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들의 사진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7만평 규모의 난징대학살 역사관을 설립하여 매년 12월13일에 추모식을 거행하고 일본의 만행을 국제 사회에 알리고 있다. 2015년 10월 9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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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갱의 발굴 장면                                                             사람 모습 그대로 보존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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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300,000 숫자들. 희생자를 상징하는 300,000개의 조약돌 전시

글‧사진 : S1·김바다 (아동문학가)

http://www.nowon.kr/health/health.jsp?mid=613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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