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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7/12/12 | 글쓴이 마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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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이야기] S11 • 김시습은 왜 귀신 이야기를 썼나?

DSC06194김시습은 왜 귀신 이야기를 쓴 것일까?
김시습의 금오신화는 5편의 이야기가 옴니버스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럿이면서 하나이다. 각 각의 이야기가 자체적으로 완결된 서사구조를 지니고 있는 개별적으로 독립된 작품이다.

그런데 김시습의 작중 화자인 남자주인공을 빼고는, 대부분 인간이 아닌 존재나 여자귀신이 등장한다.

사람이 아니면서 사람의 모습을 한 존재를 귀신이라고 한다. 귀신의 존재에 관한 호기심은 동서양을 끊이지 않고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물론이고 세익스피어의 한여름밤의 꿈도, 말기의 템페스트의 경우에도 인간과 인간 아닌 존재와의 만남과 교류가 자연스럽게 그려져 있다. 최근의 경우에도 환타지 소설과 영화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금오신화가 문화컨텐츠로서의 가능성을 충분히 갖고 있다는 의미이다.

만복사저포기와 이생규장전은 모습도 아름답고 글 솜씨도 뛰어난 절세가인 귀신과 인간 사이의 사랑이야기이다.

김시습은 외로운 일생을 보냈다. 용모도 뛰어나지 못했고 어머니도 일찍 돌아가시고 첫 부인도 후사를 얻지 못하고 제대로 가정생활의 즐거움을 누리지 못했다. 믿고 기다리고 있었던 임금님의 부르심도 수양대군의 찬탈로 허사가 되고 그는 유학자의 마음을 지닌 스님의 모습으로 전국을 방랑했다. 그러다가 사육신이 새남터에서 효수되자 그는 머리와 육신이 따로 덜어진 시신을 몰래 수습하여 안장시켰다. 비석에는 김씨녀 오씨녀 하는 식으로 여인의 묘인 것처럼 위장을 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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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만복사저포기에 나오는 이웃집 아가씨 네 명과 주인아가씨 여종을 합쳐 여섯 명의 여인의 정체가 드러난다.
바로 격식을 차려 장례를 치를 경황이 없어 임시로 묻었던 자리가 분명한데다, 원한을 품고 죽은 아가씨들의 명복을 빌고 또 빌었다는 데에서 이 이야기의 숨은 뜻이 드러난다.

품은 원한 때문에 귀신이야기가 생겨난다면, 세조의 왕위찬탈 이후 생겨난 사육신과 충신열사들의 원한 어린 이야기이자 가족사를 풀어낸 것이라 볼 수 있다.
양반이었다가 노비로 몰락한 충신 가족들의 깊은 한이 세조 조의 귀신 소동들과 깊은 관련이 있다.

시대의 이단자인 김시습은 금오신화의 귀신이야기를 통해서 역사의 이면을 빗대어서 고발하고자한 것이다.

금오신화에 나오는 귀신 이야기들을 완전히 허구로 돌리기에는 남녀 주인공들의 태도가 너무 간절하고 진지한 태도이다. 그 현실의 비극성이 가슴을 울린다. 주인공들은 모두 현실 생활에서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고 방황하는 모습이다. 이는 평생을 방외인으로 자처한 김시습의 내면을 반영하고 있다.

김시습은 현실참여 성향이 강한 인물이었다. 비록 머리를 깎고 유랑하며 벼슬길에 나아가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세상을 완전히 등진 인물은 아니었다. 오히려 방랑을 통해 더 넓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백성의 처지를 이해했다. 또 그의 기철학으로 미루어 볼 때 현실을 넘어서는 다른 존재를 인정했다고 볼 수도 없다.

large그런 김시습이 비현실적인 귀신이야기를 썼다.

김시습은 비현실 세계가 허상일 뿐이라는 것을 소설 속에서 계속 깨우쳐 오히려 환상 속에만 머물러 있지 않게 한다.

그래서 남자주인공이 산으로 들어갔다는 식으로 끝나지만, 구체적으로 간곳을 모른다. 해피엔딩이거나 천상계가 개입되는 다른 고전 고설과는 달리 그 너머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다. 그 점이 오히려 치열하게 살다간 김시습의 현실에의 직시를 읽을 수 있게 만든다.

평생을 떠돌며 살던 그가 사후에 이조판서로 추증되었고 석실에 숨겨져 있던 금오신화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로 내용이나 기교나 작가의식 어느 면으로나 뛰어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김시습은 ‘수락산의 1대 풍월주’라 불릴 만하다.

풍월은 3가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먼저 첫 번째는 청풍명월의 준말 즉 아름다운 자연을 뜻한다. 두 번째는 바람과 달에 묻혀 시가를 짓고 읊는 것을 말한다. 세 번째는 우리나라 고유의 신선사상이 담겨 있다.

수락산에 살던 서계(西溪) 박세당은 김시습의 호인 동봉 즉 동쪽 봉우리에 비겨 자신을 서쪽에 있는 봉우리에 못 미치는 서쪽 골짜기로 자신을 낮추어 불렀다.
그리고 김시습을 1대 풍월주, 자신을 2대 풍월주로 자처했다.

나우온 Ⓒ S11 • 신정희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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