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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21/01/19 | 글쓴이 노원뉴스 나우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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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사람] 102번 버스 기사 중에 여성 화가가 있다

- 모란 화가 ‘박경민’의 그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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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이야기

상계주공7단지와 동대문을 오고 가는 102번 버스. 102번 버스(흥안운수) 기사 중에 여성화가가 있다.
화가 박경민. 여자 버스 기사도 드물지만, 화가로 데뷔한 여자 기사는 더욱 드문 경우이다.

산악인이었던 남편과의 갑작스런 사별, 앞이 캄캄한 현실 속에서 힘들게 버스 운전을 시작했던 일, 버스 회사에 만연한 남성 중심 문화가 준 상처, 자신의 인생을 되찾으려 그림을 그리게 된 과정, 멋지게 자란 두 딸, 그리고 어엿한 중견화가로 거듭나기까지…….

지난 연말 그의 인생 스토리를 길게 들었다.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울먹이기도 했지만, 시련 속에서 다져진 지혜와 용기가 돋보였다. 17년차 버스운전사인 박경민 화가. 그의 그림에는 그의 인생이 진하게 담겨져 있다.

그 인생 이야기를 담은 그림들은 호평을 받고 있다. 얼마 전부터 전시회가 이어져 열리고 있고(1회 개인전 2019.11, 2회 개인전 20.1), 각종 회화전에서 수상 경력(국토해양환경 국제미술대전 대상 등)도 쌓이고 있다.
올해 5월 제3회 개인전을 준비 중이다. 그동안 비구상 작품들을 그렸다면, 이번에는 구상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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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 ‘바람’. 보랏빛 꽃 중심(암술), 붉은 꽃잎, 푸른 잎의 모란이 그림 가득 힘 있게 자리잡고 있다. 가슴과 머리에 모란이 가득 찼다.
붉고 화려하다. 동시에 그리움으로 목이 길어진 여인이 서 있다. 바람에 흩날리는 꽃들도 있다.
그의 자화상이다.

이처럼, 그의 작품에는 언제나 모란이 화려하게 등장한다. 꽃의 ‘여왕’이라 불리는 모란은 박경민 화가의 존재가치를 표시하기 위한 상징적 장치이다.

그리움, 바람, 설레임, 눈물, 기쁨, 꿈…….
모란을 중심에 두고 그린 연작의 제목들이다.

그림들은 “까불지 마, 함부로 대하지마. 나는 여왕과 같은 존재야.” “난 모란과 같이 화려하게 피어날 꿈이 있어!” 소리치고 있다.

바위를 타고 있는 한 남자에게 한눈에 반했던 강원도 양구의 시골 처녀. 유아교사를 그만 두고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단란했던 결혼 생활은 히말라야에서 들려온 남편의 실종 소식 하나로 끝이 났다.
40대 초반에 두 딸과 함께 홀로 남겨진 대책 없는 아줌마.
장롱면허 밖에 없지만, 그는 무작정 버스회사 기사 모집 공고를 보고 ‘이 길뿐’이라며 매달렸다.

Scan_20210118_154006_002대형면허 시험장에서의 합격부터, 운전대를 잡기까지의 이야기는 한편의 작은 소설이다.
그의 절박함이 관행을 깨버리는.

대형면허 시험장에서 강사의 기준과 지시대로 했더니 계속 불합격. 원인을 생각하던 그는 한참 뒤에야 깨달았다. 모든 기준이 키가 큰 남성 위주이라는 것을. 키가 작은 여성인 그와는 시야가 달랐던 것이다.

지혜롭게 대형면허를 따자마자 달려간 버스회사. 매달리는 아줌마에게 회사는 사무직을 권했다. 하지만, 사무직으로는 가족 생계를 책임질 수 없다는 생각에 급여 높은 기사 직을 고집했다. 사정사정 끝에 힘들게 시작한 운전 연수.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이 왼손잡이라는 현실이었다. 수동 스틱으로 된 버스의 기어 장치는 오른손잡이에 맞게 설계되어 있던 것이다.
두 달간의 고통스런 수습 끝에 어느 날 ‘앞뒤 시야가 툭 트이는 경험’을 했다. 감격!

운전대를 잡고 나서도 시련은 계속되었다. 특히 버스 회사에 만연해 있는 남성 중심의 문화가 고통을 더했다. 요사이 같으면 ‘성희롱’에 해당될 만한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문화적 충격과 함께 생계를 위하여 만근과 무사고에 목을 매야만 하는 나날이었다.

이런 현실 속에서 그는 스스로 자존감부터 높였다. 하늘에서 비행기를 운전하는 파일럿처럼, 그는 스스로를 ‘땅위의 파일럿’이라고 자부했다.

그의 모란 그림들에는 이렇게 시련 속에서 자신을 꼿꼿하게 세우며 살아야 했던 세월들의 이야기가 구석구석 담겨져 있다.

운전기사 생활 속에서 우울증까지 시달리던 그가 택한 출구는 그림그리기였다. 운전에 도움이 안 되었던 오른손이 그에게는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주었다.
미술학원을 다니며, 그림을 배우고 그리면서 그의 우울증도 서서히 사라져갔다.

힘겹게 버스 운전을 하며 잘 키워낸 딸들. 특히 둘째 딸은 젊은 나이에 인정받은 여성작곡가, 실용음악과 교수가 되었다. 그 딸로부터 “엄마는 겨울을 이기고 가장 먼저 피어나는 동백꽃 같다”는 말을 들은 뒤로, 그의 그림 속에는 모란과 더불어 동백꽃이 그려지고 있다.

2018년에 그린 ‘버스이야기’는 그의 성장을 보여준다.
휠체어를 탄 사람, 연인, 아이 엄마…….
온갖 종류의 손님들이 그가 모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모란꽃을 내걸고 씩씩하게 운전하는 여성 기사는 그 손님들을 기쁘게 맞이하고 있다. “어서 타세요. 반갑습니다. 고맙습니다.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자신의 하루하루 이야기를 그림이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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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_12bUd018svc151ty30b4fel5_4xdim어느 날 남과 북이 평창올림픽 개막식에 나란히 입장하는 장면을 보다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내가 강해지면 어느 누구도 날 넘보지 못하듯이, 나라도 강해지면 그 누가 내 나라를 좌지우지 못할 것이다. 그리하여 여왕의 꽃, 모란으로 3면 바다를 에워쌌다. 육지는 모란 이파리로 한반도를 나타냈다. 잎맥으로 한반도 어디든 가로질러 다닐 수 있는 고속도로가 펼쳐졌다.”
작품 “평화”는 그렇게 탄생했다.

그의 작품 세계가 자신만의 틀을 벗어나 생활과 세상을 담아내며 발전해 가고 있다. 그림 그리기를 통하여 박경민은 자신이 버스 기사임을 감추었던 과거를 넘어 당당하게 자신의 직업과 생활을 드러낼 수 있는 여유가 이제 생겼다.

사람들 앞에 버스 기사로, 화가로, 교수의 엄마로 박경민은 동백꽃처럼 예쁘게 피어나고 있는 중이다.

노원의 여성화가 박경민의 제3회 개인전은 5월 중 예정되어 있다.

노원뉴스 나우온 Ⓒ 하영권 기자 newsnowon@naver.com

http://www.nowo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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